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 『불편한 편의점』 16/17장– 갈월동에서 청파동까지, 선한 사마리아인의 길을 따라 걷다
    훈의 독서 스토리/불편한 편의점 2025. 6. 25. 22:14

    📖 『불편한 편의점』 16/17장

    – 갈월동에서 청파동까지, 선한 사마리아인의 길을 따라 걷다

     

     

    서울역, 서부 방면 출구 앞.
    사내는 잠시 멈칫했다.

    마치 자연의 품을 떠나
    아스팔트 위 트럭에 오르길 주저하는
    초식동물처럼.

    염 여사는 재촉하듯 손짓했다.


    결국,
    그는 염 여사의 뒤를 따라
    역사 밖으로 나왔다.

    조심스럽고 느린 걸음으로
    그녀의 속도에 맞춰 몇 보쯤 간격을 두고,
    갈월동 골목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늦가을,
    은행잎이 모두 떨어지고
    가로수 아래 익은 열매는
    사내와도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염 여사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왜 이 사람을 데리고 나왔을까…”

     

    그녀는
    사례를 거절한 그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다.

    자신의 파우치를 끝까지 지키려 했던
    그의 행동.

     

    노숙자임에도
    마땅한 도리를 다한 그의 모습에
    기꺼이 반응하고 싶었다.

     

     

    그녀는 교사였고,
    아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늘 피드백을 해주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모태 신앙인.

    한 노숙자가
    먼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준 이 장면은—
    그녀 자신 또한
    그 선함에 응답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약 15분쯤 걸었을까.

    서부역 뒤편의 칙칙한 거리 끝에서
    세련된 교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숙명여대 인근.
    청바지에 점퍼를 입은 여학생들이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유명한 방송 분식집 앞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염 여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내는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사내를 피하듯 스쳐 지나갔다.

    순간,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의 모습이, 사람들 눈엔 어떻게 보일까…’

     

    조금 부끄럽고,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

    이곳은 그녀의 동네,
    그녀의 작은 가게가 있는 곳이었으니까.

     

     

    염 여사는
    숙명여대 쪽 골목길을 지나
    작은 삼거리로 접어들었다.

    삼거리 모퉁이—
    그곳에 자리한 작은 편의점.

     

    그것이 바로,
    그녀의 공간이자,
    이제는 사내에게 도시락을 건넬 수 있는
    새로운 자리가 되었다.

    편의점 문을 열며
    그녀는 손짓했다.

     

    “들어오세요.”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다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순간—
    낯선 공간 안,
    익숙한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어서오세요. 아, 오셨어요?”

     

    🗒️ 훈이의 독서 메모

    이 장면은
    “작은 신뢰”와 “다정한 피드백”의 교차점 같았다.

    가르침은
    꼭 교실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교단에서 벗어난 자리,
    편의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안에서도
    누군가는 선함을 실천하고,
    누군가는 응답한다.

    그리고,
    그 모든 발걸음이 모여
    다정한 제안이 되고,
    묵묵한 응답이 된다.

     

     

    반응형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