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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재난의 세계사』 66~67p“리얼리즘의 충격, 낙관주의의 종말”
    훈의 독서 스토리/재난의 세계사 2025. 6. 2. 11:30

    📖 『재난의 세계사』 66~67p

    “리얼리즘의 충격, 낙관주의의 종말”

    – 볼테르와 루소, 리스본 지진 앞에 선 철학

     

    1755년 12월, 볼테르는 시를 발표했다.
    그는 묻는다:

    “어머니를 품에 안고 죽은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었는가?”
    “왜 하필 리스본이, 왜 무고한 자들이?”

    그의 시는 철학적 낙관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존재하는 것은 선하다"
    "모든 것은 결국 잘 될 것이다"
    그는 이를 ‘무시무시한 혼돈 앞의 태연함’이라 비판한다.

     

    이 시는 종종 무신론의 선언처럼 읽히지만,
    볼테르는 신을 완전히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신의 존재와 인간의 고통 사이의 간극에 분노했고,
    그 모순 앞에서 진짜 신을 묻고 싶었던 것이다.

     

    ✉️ 루소의 응답 – 고통에는 목적이 있다

    루소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전통적 신정론(신의 선함과 전지전능함을 믿는 관점)**을 옹호한다.

    “고통은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진 탓이다.”
    “도시 문명이 초래한 자유의지의 결과다.”

    그는 도시 생활을 타락의 상징으로 보았고,
    **“차라리 그들이 그날 죽지 않았더라면, 더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역설적인 주장을 펼친다.

     

     

    🧠 두 철학자의 충돌, 그러나 공통의 전환점

    볼테르는 종교적 위선을 폭로하고,
    루소는 자연주의와 인간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러나 둘 다 더 이상 고통을 “신의 시험”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볼테르와 루소는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고통 앞에 어떻게 말할 것인가?”

    ☑️ 태연하게 “다 잘될 거예요”라고 말할 것인가?
    ☑️ 아니면 현실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사유를 시작할 것인가?

    책을 덮으며 알게 됐다.
    진짜 철학은 낙관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고 그 응답은 우리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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